사도행전 20장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의 받은 사명은 어떠한 사명이었기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이러한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면 미쳤다고 말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젖으로 먹여야 할 성도들이 있는 반면에, 밥으로 먹여야 할 성도들이 있는 것이다.(고전 3:1~3)
고린도전서 3장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바울은 그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그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고백한 말씀은,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이 장성한 장로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바울은 이방 선교를 다니던 중 에베소 교회를 여러 번 순방하였을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의 눈물과 기도로 성장한 교회였다.
그는 이제 밀레도에서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기 위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그간 애써 성장시켜 온 믿음의 형제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형제들이 눈앞에 아련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성령에 붙들려 고난의 길로 들어가는 중이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은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행 20:22~23)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바울의 사역을 친히 보았고 함께 동참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 비밀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믿음의 분량이 장성한 장로들을 모아놓고 이 같은 설교를 하였던 것이다.
내가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모든 일에 겸손과 눈물로 사역한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아가며 주님을 섬긴 일도 잘 아실 겁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을 위해, 대중들 앞에서나 각 사람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 앞에서 증언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시기를, 다가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합니다. 이 일을 행함에 있어,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 내용을 읽으면, 삶의 목적이 고난과 죽음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낮고 천한 모습으로 살다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은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런데 바울은 그의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성령 안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이토록 담대하며, 고난과 역경을 감내하는 것일까?
그 비밀은 하나님의 나라를 아는, 천국 소망에 있었다.(롬 11:13~14)
로마서 11장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의 고별설교를 생각하며,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왜, 세상에 태어나 십자가를 지는 등, 온갖 고난을 당하였을까?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신다면 이렇게까지 하실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가 지으신 세상에서 질그릇 같은 삶을 살게 하시고, 고난과 역경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해할 수 없는 회의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 있으면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시면 될 것인데, 왜 고난을 주시는 것일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죄 때문이다.
죄로 인하여 우둔하게 된 것이다
즉, 천사가 타락하여 죄를 지은 것이다. 천사들은 천국에서도 타락하여 죄를 지었는데, 세상에서 잘 살다가 천국으로 들어가면 더욱 타락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세상이라는 허상을 통해 고난을 주시고, 천국의 실상을 되찾도록 만드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자, 사도들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사람의 실상, 곧 천사의 실상을 보았다.(히브리서 1장)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실상이고, 세상은 잠시 살다가 사라지는 허상임을 알았던 것이다.
잠시 살다가 사라지는 고난을 통해, 장차 크고 비밀한 실상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기쁨과 영광이 세상의 고난을 이기게 만든 것이다.(고후 4:17~18)
고린도후서 4장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들은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영적 체험은 없다. 그러므로 바울과 같은 신앙은 없을지라도 믿음만은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믿음을 지키게 하려고,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사명을 본 보이셨고, 사도들도 이와 유사한 사명을 본 보인 것이다.
우리들은 선진들의 사명을 깊이 간직해야 한다. 그 믿음이 없이는 천사의 실상을 되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신의 허상을 벗어나는 그날, 천사의 실상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할 것이다.(마 22:30)
마태복음 22장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우리들도 사도 바울의 사명을 깊이 생각하여, 자신의 달려갈 믿음과 주 예수께 받은 구원의 기쁨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2024. 12. 17.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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