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위 말씀을 읽으면 아무도 남의 잘못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면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그 사람은, 자신도 그러한 죄를 짓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남의 불의를 보면, 판단하고 꾸짖고 심판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불의를 행하다가, 즉시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를 속이다가 그러하였다.(행 5:1~5)
사도행전 5장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그러면 성경 말씀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성경 말씀은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말씀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성령의 비밀을 모르므로, 성경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성령 안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고 아는 것을 증언한다. 성령 안에서 보고 아는 것을 증언하므로 불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아니한다.(고전 2:10, 15)
고린도전서 2장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구세주]로 오신 예수께서도 성령 안에서 받은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였다.(요 5:30)
요한복음 5장
30.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성령으로 난 자들이므로, 성령의 권능으로 판단하는 것이다.(요 3:6)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달란트의 재능으로 판단한다.
달란트의 재능은 세상 사람들의 지식과 능력이다. 육신으로부터 배운 세상의 능력은 온전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능력으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면, 자신도 세상의 것으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죄를 짓고 살면서, 세상의 죄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 욕심이 강한 자들이 있다.
욕신이 강한 자들은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의 뜻과 다르면, 남을 욕하고 비판하며 헐뜯고 싸운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하였다.(약 1:15)
사도 바울도 성령의 권능에 이끌림 받기 전에는, 세상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죄를 범한 경험이 있기에, 세속 된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도 성령의 권능이 역사할 때에는 진리를 행하고 크신 권능을 행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으면, 세상 사람들처럼 실수도 하고 죄를 짓는다. 죄짓고 실수하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죄짓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근신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형제들(사도들)이 죄를 짓거든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말씀하였다.(마 18:21~22)
마태복음 18장
21.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그리고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보내심을 받았기에, 육신의 죄에 대하여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롬 9:18~16)
로마서 9장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육신의 재능으로 살아간다.
불완전한 육신의 재능으로 살면서, 많은 것을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깨우침은, 많은 사람들이 남을 판단하는 실수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눈에 들어있는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2024. 1. 27.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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