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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해설

정죄하지 말라(눅 6:37)

by 솨케드(שקד) 2024.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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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장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본문 구절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많은 말씀들 중에 비판과 정죄, 그리고 용서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겠다.


왜, 사람들은 남들에 대하여 비판을 해서도 안되며, 정죄를 해서도 안 될까?
그리고 왜, 용서를 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는 나 자신부터가 비판의 대상이요, 정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부터 용서받지 않으면, 죄를 면할 수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지도, 정죄하지도 않으셨을까?
예수께서는 죄가 가득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 말씀하셨다.(마 12:34)


마태복음 12장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또,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할 때에도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았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베드로 앞에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즉시 죽임을 당하였다.(행 5:1~6)
이는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는 베드로를 속였기 때문이다.


말씀을 정리하면,
육신은 입은 사람 자체는 불완전하다.
불완전함으로 비판을 받고 정죄를 받는다.
그리고 불완전하므로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완전할 수 없기에, 완전할 수 없는 남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육신을 입은 사람의 몸에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면, 사람들의 죄가 보이고 악함이 분별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권능이므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서의 대상과 비판, 그리고 정죄의 대상이 밝혀지는 것이다.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한 예수와 사도들은, 성령 안에서 비판하고 정죄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은 평소 때에는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살아가게 됨으로, 남들을 쉽게 비판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육신의 소욕에 이끌림을 받으면, 실수도 하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남들의 불완전함을 용서하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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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불완전하게 지음 받은 존재이다.
육신은 입은 인간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신이 완전할 수 없는 이유는, 타락 천사들이 죄로 인하여 육신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타락 천사들을 죄에서 구원하려고, 죄 없는 천사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셨다.(에녹 3서)


[에녹 3서]
11. 인류 탄생
-중략-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땅)에 있는 타락 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 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땅)으로 내려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죄가 없으시지만,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태어나셨기에 예수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롬 8:3)


로마서 8장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도 죄 있는 육신을 입었기에,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은 때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인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온전한 삶을 깨우치게 하려고 이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보면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아야만 할까?
그렇지 않다.
옳은 것을 보면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을 보면 그르다고 말하면 된다.(마 533~37)


마태복음 5장
33. 또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사람들의 생각은 똑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바라보는 관점도 서로가 다르다.
이는 사람들마다 독특하고 특별하게 지음 받은, 하나뿐인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이를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라 한다.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란, 외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똑같을 수 없는 하나뿐인 생명체라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다른 점들이 너무나 많다.
자본주의가 있는가 하면 공산주의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는가 하면 사회주의가 있다.
이는 광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협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그렇다.
한 집안 식구들마저 생각이 다르고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특히, 각 나라들의 정치 행태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각 나라마다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다.
여당의 생각과 야당의 생각은 참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타협하기가 쉽지 않다.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므로 화평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화평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않아야 가능해질 수 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귀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려고 애쓴다. 내 생각과 다르면 비판하고 정죄하기를 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죄는 쉽게 용서받으려 하면서, 남들의 죄는 쉽게 용서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것은 그들의 심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악한 마음에서 거룩한 마음으로 돌이키는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히 12:14)


히브리서 12장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내가 비판받지 않고 정죄함을 받지 않으려면, 남을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원한다면, 남의 죄도 용서할 줄 아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죄도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함부로 정죄하지 마라."


2024. 12. 1.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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