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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오직 여호와(יהוה) 한 분이시다

삼위일체가 아닌, "셋이 하나의 연합된 영"입니다

by 솨케드(שקד) 201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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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가 아닌, "셋이 하나의 연합된 영"입니다.
 
"삼위일체"의 용어는 성서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이론은 하나님의 영(성령, 권능)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 영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식적으로 풀어 만든 용어입니다. 세상은 "니고데모"처럼 육에 속한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영(성령, 권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세상이 이해하는 관점에서 삼위일체를 설명하고 있지만 그 실상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요 3:6~11)
 
이를 올바르게 표현하려면 "셋이 하나의 연합된 영"입니다. 여호와(יהוה) 하나님과 그의 영으로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아들 예수와 그의 영(성령)이 여호와(יהוה)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영(성령, 권능)이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그의 사자들에게 임하시면 이들에게 임하신 영(성령, 권능)도 여호와(יהוה)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즉 또 다른 보혜사(성령)가 각 사람들(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임하시면 이들의 영들도 여호와(יהוה) 하나님 안에서 모두 "하나"입니다. 이가 성서적인 이해이며 올바른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우리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올바르게 깨닫지 못함은 말씀 안에 감추어진 비밀 때문입니다.
이를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한 가지씩 풀어 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 그리고 빛에 대하여입니다.
여기 말씀(로고스)은 하나님의 영의 말씀이므로 이 말씀이 곧 생명이며, 빛입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1: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1: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 말씀(로고스)은 하나님의 능력과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 중에 말씀(로고스), 생명, 빛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는 여호와(יהוה) 하나님, 한 분이 나타내시는 말씀(하나님)입니다.
한 분 하나님을 삼위일체설로 분리하여 가르치다 보니, 이를 받아들이는 성도님들의 입장에서는 어렵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와, 성령은 각각 하나의 인격체가 있고, 이는 같은 한 분의 하나님이라고 설명하니, 분리된 3인격체를 1인격체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성도님들은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도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시니 더더욱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설로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부르시는 표현이 되니 말입니다. 이때문 신약의 하나님이 따로 계시는 것 같은 혼란 등, 심지어는 구약 시대는 끝났으니 신약 시대에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로 모시고 믿으면 된다는 등...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이므로 성령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믿으면 된다는 등...
물론 우리들이 사는 이 시대는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이 새 언약으로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하신 약속에 의하여 살지만 말입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말씀(하나님의 로고스)은 무소부재하시며 이 말씀이 때로는 사람 외부에서 환상과 꿈으로 나타내시고, 때로는 말씀으로 약속하신 약속대로 사람 몸 안에서, 때로는 약속하신 그 말씀으로 계시 받은 자 안에서 인치시고 보증으로 확증하시며 마지막 날 다시 살리시는 그날까지 함께하시며, 인도하시겠다는 그 약속으로 지금도 함께하십니다.
이 말씀(로고스)은 하나님의 영(성령, 권능)입니다. 이 영(성령, 권능)을 세상이 이해하도록 성경에 번역하여 "그"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성령, 권능)으로 그의 사자들이나 천사들을 통해 역사하므로 이를 "그"로 지칭하여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말씀들은 세상이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성령, 권능)으로 보내심을 받은 그의 사자들이 아니면 깨닫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이를 3인격체로 분리하여 혼란를 일으킬 필요가 없습니다. 즉 말씀(로고스) 한 분이 때로는 이런 모습으로, 때로는 저런 모습으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의 이름으로...
태초, 구약 시대에 오신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이 곧 말씀(로고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의 사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시는가 하면, 말씀(로고스, 성령)으로 그의 사자들에게 다양하게 나타나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예수,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등에게...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은 그의 사자들에게 환상이나 꿈을 통해 나타나시면서 당시 그의 백성들에게 지켜야 할 규례와 계명들을 주었고 또 인도하였습니다. 이렇게 선지자들에게 나타나신 분이 곧 말씀(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신약 때 예수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곧 구약 때의 말씀(하나님)입니다. 이 말씀(성령)이 성령(권능)으로 예수의 육신을 잉태시키셨고 구약 때 말씀하신 그 약속대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이를 "성령"이라고 표현할 뿐, 이가 곧 말씀(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성령)으로 오셨지만 사람의 육신과 함께 역사하므로 "사람(예수 육신)과 하나"가 됩니다.
즉, 육신의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 임하신 몸이지만 육신의 죄악된 고통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육신은 예수님의 인성과 함께하는 몸을 말합니다. 즉 배고픔과 육신의 소욕에서 오는 모든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공생애 사역을 앞두고 이 육신의 고통(육신의 소욕)을 이기기 위해 성령에 이끌리어 40일간 시험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영(성령)으로만 살면 시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즉 예수님 몸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시험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영(성령, 로고스)이 육신을 입고 오심은 우리 죄인들이 육신에서 지을 수밖에 없는 죄를 사하시기로 약속하신 약속의 말씀대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통해 모든 것을 느끼는 것처럼, 예수께서도 인성의 육신을 통해 모든 것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는 그 몸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어 함께 역사하였다는 것입니다. 공생애 사역을 앞두고 말씀(성령)에 이끌리어 육신을 이기는 시험을 받으시고 성령(말씀)의 힘으로 승리하였으며, 육신 안에 거하시는 그 말씀(성령)이 하신 말씀으로 친히 사역하실 때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리고 "내 안에 그가 계신다", "그가 내 안에서 나타내 보이시니 그가 곧 내 아버지시다"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9~10)
 
이는 곧 예수님 몸 안에 말씀(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 예수님 몸 안에 계신 그분(말씀)께 기도하였고 함께 행하신 것입니다.
마치 한 사람 몸 안에 두 인격체가 있음을 느낌과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러한 영적 체험은 성령(권능)을 받은 자만 깨닫습니다. 이가 곧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4~15)
 
여기 말씀에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한 자가 "나"라면 지혜를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신 대로 지혜를 받아 말하도록 하는 이는 "말씀(성령)"이시니 당시 예수님은 이와 같이 아버지의 영(성령)으로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체험이 없이 이를 이해하기란 무척 힘들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늘의 비밀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이때도 성령(말씀)의 인치심이 내 몸 안에 계심을 확신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또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증거한 말씀들 중에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2~25)
하시지 않습니까?
 
인침 받은 성도들 또한 기도하실 때 내 뜻(육신)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대로 하옵소서 하지 않습니까? 이는 마치 2인격체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은...
이것이 확신되지 않고 하는 기도는 허공을 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이 비밀 아니겠습니까?
이를 비유로 하신 말씀이 바람의 비유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3:8)
 
당시 예수님 몸 안에서 역사하시는 말씀(하나님의 영)을 보고 이해 못하는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어디에서 찾느냐 "내가 곧 그를 증거한다", "그가 내 안에 있다"라고 이해시키십니다. 예수님 몸 안에서 역사하시는 말씀(하나님의 영)이 곧 구약 때 선지자들의 몸 밖에서 역사하신 말씀(하나님)과 동일한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임하시는 말씀(하나님 영) 역시 같은 말씀(성령)이며 성령의 형태로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보증으로 인치십니다. 이 인치심의 확신을 믿고 마지막 날까지 믿음에 굳게서서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하심이 아닙니까?
그날까지 믿음으로 살되 도구로 쓰이는 나를 높이지 말고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말씀(하나님)께 경배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임하시는 말씀(성령)은 말씀(성령)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대로 보혜사(말씀,성령)를 주신 것이고 말씀으로 인치심(성령 임함)의 확증을 주신 것입니다. 이 확신이 곧 성경 말씀의 증거들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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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부활을 직접 보지 못해서도 보혜사 성령이 약속(말씀)대로 우리 안에 임하셔서 인치심으로 보증하십니다.
믿음이란? 열심히 복음 전하고 봉사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여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 인치시는 성령(말씀)은 곧 예수님 몸 안에 임하신 말씀(하나님)이시며, 이는 곧 한 분이시기 때문에 친히 말씀하시길, 말씀으로 인침 받은 자는 예수인 나와 "하나다", "친구다", "형제다", 그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 하신 것입니다. 즉 이가 곧 같은 말씀(성령)에서 오신 말씀(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 22:29~3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
 
이 말씀의 비밀은, 하나님이 그의 사자 예수께 성령으로 기름 부어 역사한 것처럼 예수가 부활한 후 이 땅에서 또 다른 그의 사자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어 더 크게 역사하면 더 큰 능력으로 일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때 나타날 하나님의 권능(성령의 역사)은 하나님만 아시는 일입니다. 마치 에스겔 선지자에게 미리 보이신 마른 뼈들의 부활은 이와 같을 것입니다(겔 37장)
 
이와 같이 말씀(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성령, 권능)이 하시는 일이므로 모두가 "하나"이기에 이의 증거를 받은 자는 장차 이 말씀대로 이루어 짐을 반드시 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이때 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 모든 심판을 맡기신다는 것도 예수를 통해 역사하신 말씀(하나님)이 곧 그분이시기 때문에 말씀이신 그분의 약속대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도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역사하신 그분(말씀)이 죄 사함의 약속을 예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그 약속대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중보자는 구세주로 보내심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사자들을 통하여 이를 증거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늘보좌 계시를 그의 사자 "이사야, 에스겔, 사도 요한"에게 보이실 때, 한 분이신 하나님의 보좌를 때로는 이런 모습(에스겔 1:4~28)으로, 때로는 저런 모습(이시야 6:1~13), (4:7~11)으로 각각 보이심은 이를 증거하고 계십니다.
다 같은 하나님의 보좌, 그룹들(Cherubim)의 모습을 그의 사자들에게 성령으로 다양하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적 말씀의 비밀들을 육신의 의지로 이해하려다 보니 어렵게 여겨질 뿐입니다.
한 분의 말씀(하나님)이 구약 때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말씀으로 약속하신 그 약속(말씀)대로 이때까지 임하셨으므로 한 분의 하나님을 두고 3위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보좌 역시 한 분의 보좌가 아닌 3인격체의 보좌로 나누어서 이해하시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성령) 안에서 본 "한 분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세상이 말하는 삼위 같은 설명으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즉 학설 같은 교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갑돌"이가 동네 친구들에게 각각 1억 원의 돈을 꿔주고 말하길 5년까지는 매년1,000만 원씩 만 갚으라고 약속하면서 5년 후에는 따로 변제하는 방법을 약속하겠노라고 약속하고서 5년 뒤에 따로 약속하기를 이제부터는 변제할 필요가 없다. 대신 나의 새로운 약속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걸 다 변제토록 하겠다. 그러나 진실로 그 은혜를 감사하는 자에게 내가 새로이 변제하지 않아도 되는 증표를 써 주겠다. 이 증표를 회계하는 그날 간직하였다가 나를 만나서 회계하자 함과 같으니...
이 모든 것이 "갑돌"이를 통해 이루어진 약속이지, 약속할 때마다 "갑돌"이가 다른 "갑돌"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이도 역시 5년을 두고 약속한 "갑돌"이의 약속과, 5년 후에 따로 약속한 "갑돌"의 약속과, 감사하는 자에게 무변제의 약속을 한 "갑돌"이의 약속으로 회계할 때가 아닙니까?
이 중 어느 한 가지의 약속이라도 빼면 근거가 없어지니 모두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즉 아버지(말씀)의 약속으로 아들(말씀)에게, 아들(말씀)의 약속에서 성령(말씀)으로...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이를 영안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육안으로 이해를 하려다 보니3위라는 학설이 나왔다고 보아집니다.
땅의 얘기를 해도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하늘의 얘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
 
당시 제자들은 성령이 임하기 전에 이러한 말씀들이 어려워 이해를 못합니다.
즉 십자가 보혈()로 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는 이 말씀을 제자들도 이해를 못하여 말씀이 어렵도다 하신 걸 보면 이해는 됩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요 6:60)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하여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이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라는 뜻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도 아니며,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룬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곧 말씀(성령)으로 계시 받은 자 안에 성령의 인치심이, 인치심 받은 자의 안에서 확증되면 그 인치심(말씀의 약속)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있다"라는 증거이며 이 인치심의 약속이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면 그 약속대로 이루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리고 "볼 수 있게 임하는 것도 아니요, 또 여기저기 있다고도 못한다 함"인치심 받은 자와 인치신 자만 알며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까?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눅 10:22)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은 이 글들 중에서 혹 핵심의 내용에 잘못 이해된 부문이 있으시면 알려 주십시오. 말씀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 8. 26
서울에서 하나님의 사람, 작은 자(솨케드:שקד)
 
 
<추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어....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이 말씀의 뜻을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 풀어봅니다.
성령으로 잉태됨이란, 몸은 하나님의 권능(성령)에 의해 육신으로 지음 받았으나 육신 안에 거하시는 영(성령)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거하시는 몸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의 혈통이란, 다윗의 계보를 따라 사람 몸에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는 육신으로 태어났습니다. 육신은 인성이지만 예수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신성입니다.
성령이 그 사람에게 임하여 역사하면 그 사람과 "하나"가 됩니다.
 
다음 말씀에서도 이를 깨닫게 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여기서 말하는 혈통이나 육정으로 나지 않았다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셔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들은 아담의 후손, 즉 우리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그 혈통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에서는 사람의 혈통이 아나라 합니다.
이 비밀의 말씀은 육신은 아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사람들의 육신을 입고 왔지만 영은 이들의 육신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영"도 아닌,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 비밀의 말씀을 하나님은 이렇게 증거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났지만 그들은 둘도 없는 각각의 유일한 독생(모노게네스)의 "하나님의 영"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육신은 아브라함,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아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내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마 22:45)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 8:58)
 
우리들이 이러한 비밀의 말씀들을 온전히 깨닫지 못함은, 하늘의 비밀들은 세상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세기>에서 "우리"가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들(새벽 별들)임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욥 38: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느니라(욥 38:6~7)
 
천지창조 전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우리들", 즉 그의 아들들(새벽 별들, 천사들, 그룹들)이 누구였는지, 성경은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네(욥)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연수가 많음이니라(욥 38:21)
 
"욥"은 이 사실을 온전히 기억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서는 누구나 거룩한 영들의 세계를 온전히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희미하게 기억될 뿐입니다. 그래서 네가 아마 알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하나님)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솔로몬)가 거기 있었고(잠 8:27)
 
"솔로몬"은 이를 기억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음을 온전히 기억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노년기에 하나님의 권능에 이끌리어 보게 된 하늘나라의 비밀을 성령의 지혜로 밝히고 있습니다. 또 이를 깨닫고는 세상의 것들이 헛된 것임을 전도서를 통해 밝힙니다.(전도서 1장 참고)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아굴)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아굴)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잠 30:4)
 
"아굴" 자신은 짐승으로 비유하면서 짐승 같은 자신이 하늘에 올라가서 이 엄청난 비밀을 안 사실을 너는 아느냐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들이 자신의 이름임을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늘에 모습을 본 자신이 짐승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예레미야" 자신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왜냐면 육신의 탈을 쓴 짐승 같은 몸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 거룩한 영의 세계의 기억들이 육신에 의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희미하게나마 기억은 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를 증거한다는 것은 육신으로 살면서 성령에 의해 자신의 영이 육신을 입기 전에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직접 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즉 이들이 천지창조 전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기억들을, 이 땅에 내려와 선지자의 역할을 하면서 기억한다는 증거입니다.
예를 들어 "아굴"이 이를 보지 않았다면 이를 증거할 수 없을뿐더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 지를 깨닫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를 보았기에 자신이 짐승이나 다름없음을 느낀 것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에 비하면 자신이 짐승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이해 안 된다고 해서 이들의 말씀들을 무조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다 하면 "아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아굴"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천지창조를 보았다는 뜻입니까? 말도 안 되는 설득으로 얼버무리면 성경을 성경으로 깨닫지 않고 어떤 고정관념을 정해 놓고 거기에 억지로 갖다 맞추는 꼴이 되어 삼척동자도 이해 못하고 의심을 갖지 않을까요? 이는 분명 "아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지창조를 본 것입니다. 즉 육신으로 살면서 성령에 이끌리어 직접 본 것이라 여겨집니다.
 
우리들은 태어나면서 언제부터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의 육신이 성령으로 잉태 되어 약 30세까지 살다가 때가 되어 성령으로 기름 부어 사역하시기 전까지는, 즉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신성의 체험)를 체험하기 전까지는 예수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지냈듯이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십자가를 통한 어린양의 제물로, 그리고 구세주의 역할을 하여야 하기에 남달리 성실하고 지혜롭게 자랍니다.
침례(세례)를 통하여 성령의 기름부음과 함께 하나님(성령)께 이끌리어 쓰임 받을 때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그때부터 그리스도(기름부음)라는 칭호가 붙습니다.
그리스도란,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음을 뜻합니다.
 
오늘날 이 사실들이 세상에 감추어져 있었기에 아무도 이에 대하여 말할 수 없었으니...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들 모두가 한 "성령"안에서 일어나는 "하나"임은 확실합니다.
이 "하나"라는 개념을 세상 사람들의 사고로, 즉 육신의 사고로는 온전히 이해 못하니 의문은 계속 남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 속에 임해 보지 않고는 깨닫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영적 체험 없이 이를 깨닫기란 엄두도 안 나겠지만, 깊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여기서 모두 밝히지 못하므로 필자가 기록한 모든 글들을 종합해서 이해하시면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필자가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잘 이해시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의문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십시오. 시간 되는대로 답해 올리겠습니다.
필자는 신학적 지식이 전혀 없습니다. 누구의 글도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령 임함(사 6장, 겔 1장, 계 4장... 등)의 흔적들을 기억한 지혜로 깨우친 것들을 올려드릴 뿐입니다.
 
2013. 7. 3
하나님의 사람, 작은 자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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