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장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다.
지나가시는 길에 한 마을에 들러 문둥병환자 열 명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리서 소리 높여 외쳤다.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저들은 제사장들을 찾아가는 길에서, 이미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을까?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가 [구세주]의 사명을 이루도록, 성령의 권능을 행하고 계셨던 것이다.(행 10:38)
사도행전 10장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런데 깨끗하게 나음을 받은 나병환자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예수께 찾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배척당하던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혈통을 지키지 않고, 이방민족들과 혼혈한 족속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인 한 명만 찾아와 감사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열 명 모두가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아홉 명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온 사람이, 이방인 한 명뿐이더냐?"
이 말씀을 하신 후 사마리아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왜, 나병환자 열 사람 중에, 한 사람만 감사하였을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있었던 자들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지키고 있던 유대 전통을, 하나님보다 더 숭배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이었고, 저들의 전통을 더 앞세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을 배척하고, 예수가 행하는 능력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질병이 있어도 제사장들을 통하여 고침을 받지 못했다.
하나님은 세속 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시기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둥병자들은 예수가 병 고치는 능력 있는 분임을 알고, 예수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질병이 있을 동안에는 예수께 간절히 간구하였지만, 질병이 낫고 보니 마음이 변해버린 것이다.
물론, 문둥병이 나음을 받을 당시에는 잠시나마 기쁘고 감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에게 보인 후로는 마음이 변한 것이다.
왜냐면, 제사장들은 예수의 능력보다 저들의 전통을 더 앞세우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문둥병을 고침 받은 아홉 명 모두는 제사장들 밑에서 배우고 자란 유대 민족들이었던 것이다.
당시 유대민족들은 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저들의 지도자로 삼았기 때문에, 저들의 교훈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둥병을 고침 받고서도, 예수께 찾아와 감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유대민족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에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백성들이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교훈에 빠진, 아홉 명의 심령이 너무나 애통하고 불쌍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쌍한 영혼 아홉 명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애통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유대인들의 심령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말씀과 행위가 진리라는 것을 알고서도, 세상 사람들의 풍조에 빠져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현세에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지도자들의 권세에 묻혀버린 것이다.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했기 때문에, 진리보다 세상 풍조에 속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심성은 왜 그러할까?
사람들의 심성은, 그릇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로 태어났기 때문이다.(엡 2:2~3)
예수께서 천국 복음을 증언하실 때, 가까운 집안 식구들도 쉽게 믿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지방 사람들은 더욱 믿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지방 사람들이 믿었고, 예수를 존경하였다.(마 13:53~58)
마태복음 13장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곳을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오늘날로 생각하면, 달란트의 재능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달란트의 재능은 육신의 능력이므로, 성령의 권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적과 기적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예수께서는 어린 적부터 나사렛 주민들과 함께 살았기에, 그에게 무슨 큰 능력이 있겠느냐는 고정관념이 지배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 모습일까?
예수 그리스도가 사역할 당시처럼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왜냐면,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실 때에 역사하는 것이지, 평소 때에는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요 7:39)
그러므로 아무리 능력 있는 말씀과 지혜의 말씀을 들어도 잠시 기뻐할 뿐, 또다시 세속 된 풍조와 세상 문화에 휩싸이는 것이다.
이는 마치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다.(마 13:20~21)
마태복음 13장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그리고 같은 교회를 다니다가 다른 지방으로 이사한 후, 오랜만에 그 교회의 성도들의 길흉사를 방문하면, 알던 사람들도 모르는 척하는 시대이다.
무엇이 병들었을까?
교회는 천국 백성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세속 된 무리들로 모인 곳이라서 그러할까?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배울 뿐,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한다고 말하지만, 겉모습만 그러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사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같은 교회에 몸 담고 있을 때에는 길흉사가 있으면 서로 도울 수 있기에, 자신의 유익을 바라보며 싸귀게 되지만, 교회를 옮긴 사람들은 나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아홉 명의 유대인들처럼 기존의 전통을 앞세우는 세상 풍조가, 저들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는 영생하는 하늘나라보다, 잠시 살다가 지나가는 세상이 더 낫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2024. 9. 27.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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