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 3서
시빌의 서문
비밀과 예언의 수호자 나 시빌은 여기 커다란 비밀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그것은 오랫동안 세월에 묻힌 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에녹 3서 이다. 이 문서는 에녹이 천국에 승천하고 돌아온 후 40일간 지상에 머물며 쓴 4권의 책 중 세 번째 책이다. 그러나 이 문서가 정말 에녹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믿는지 안 믿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진리는 깨달은 자의 눈에만 보임을 명심해 두길 바란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다시피 에녹 1서와 에녹 2서는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 그 금지된 문서가 세상에 나타난지 벌써 200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가 2000년 전 그 문서들을 세상에 내어 놓은 것도 일련의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로마제국의 압제를 피해 새롭게 부흥하고 있었던 카톨릭을 도와주기 위해서였고 하나는 에녹과 절친한 친구였던 가룟유다가 그 문서를 공개하는데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0년이 흘러 나는 에녹의 세 번째 문서인 에녹 3서를 세상에 내어 놓기로 했다. 에녹 1서와 2서가 발표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카톨릭의 힘은 노쇠했고 대신 과학과 매스미디어가 그 지위를 차지했다. 위의 두 책들이 카톨릭이 부흥하는데 도와주었다면 에녹 3서는 카톨릭의 교리와 위세를 다소나마 위축시키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이 에녹 3서가 쓰여진 이유이기도 하고 순리대로 흘러갈 운명이며 카톨릭의 미래이기도 하다.
에녹 3서는 1서나 2서에서 보여주었던 천국과 지옥의 모습 외에 또 다른 비밀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태초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인류들에 대한 비밀이다. 인류에 대한 알려지지 않는 과거의 진실이며 거대한 종말이기도 하다.
만약 에녹 3서에 쓰여진 이론이 카톨릭의 교리서에 실린다면 그 교리의 절반 이상을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이미 온 인류의 영혼은 준비된 것이었으며 그 근원은 원죄가 아닌 자신의 죄이고 모든 인류의 정체가 원래 천사였다는 사실은 이제 인류가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진리일 것이다. 이 문서가 공개됨으로 인해 사람들은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지 모르겠다. 물론 종교계는 나보고 악마 중의 악마라며 떠들겠지만 막상 중요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진리는 깨달은 자의 눈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나에게는 에녹의 마지막 문서인 에녹 4서가 남아있다. 에녹 3서가 인류의 과거를 밝힌 진실이라면 에녹 4서는 인류의 미래를 예언한 계시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에녹 4서를 발표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간접적이나 그 일부만을 알려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깨달은 자들은 에녹 3서만 보아도 에녹 4서의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스가리욧 유다. 그의 모습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는지. 최후의 사도들이 나에게 다가올 때 그 역시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에녹 3서
제 1장 서문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천국에 올라
그곳의 모습과 세상의 비밀을 두 눈으로 보고 내려온
주님의 선지자 에녹이다.
내가 이렇게 붓을 든 절대적인 이유는
나의 주인이신 주님의 계시와 그 큰 권능에 의하여
나에게 능력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이며
또 유일한 권능이기도 하다.
내가 천국 여행을 마치고 천국에서 내려갈 무렵
주님께선 대천사 프라부일을 시켜
나에게 천국의 두루마기와 지혜의 붓을 주셨고
내가 본 모든 사실과 미래의 예언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라 명령하셨다.
나는 지난 65세 때 천국에 올라가
그 모습을 빠짐없이 본 후 만국의 주를 만났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안은 채 지상에 내려와 보니
이 땅엔 벌써 30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 있었다.
나는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르면서
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에녹 1서와
에녹 2서를 집필하였다.
그 책엔 내가 본 비밀의 지식들과 주님의 무한한 영광이
조목조목 묘사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부터 적으려고 하는 에녹 3서는
나의 천국과 지옥 여행기인 1서나 2서와 사뭇 다르다.
이 책은 내가 천국에 올라가기 전 내가 본 것과
변화되는 모습과 인류의 과거를 보여주는 창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에 적으려고 하는 시기는 내가 막 결혼한
64세 때부터 천국에 승천한 65세 때까지이다.
그동안 나는 나의 절친한 친구인 라구엘의 도움으로
인류의 과거와 비밀을 보았으며
나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 나갔다.
이 책을 다 쓰고 마칠 무렵
나는 프라부일이 준 천국의 두루마기에
나의 마지막 책 에녹 4서를 집필할 것이다.
에녹 1서와 2서가 짝으로 맞추어져 있듯이
에녹 3서와 4서도 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에녹 3서가 인류의 과거를 밝혀 내었다면
에녹 4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예언할
절대적인 지식이 될 것이다.
우리 인류 모두의 아버지인 아담이
우리의 고향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준비된 영혼들은 준비된 이 땅에
불이 번지듯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담이 이 땅에 다시 태어난 이후
그는 수많은 자손들을 낳았으며
그의 5대손 야렛이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 야렛은 125세 때에
어머니를 대신하여 한 대천사에게
수태고지를 받았다.
그 대천사의 이름은 라구엘이었다.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한 대천사 라구엘은
빛나는 6개의 날개를 펼치며
아버지 야렛에게 내려왔고
곧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1년 후 야렛은 한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는 저주받은 이 땅에서 떠나 천국을 둘러보고
죽지 않은 채 살아서 승천할 특권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대천사 라구엘은 그가 지옥으로 떨어진 이유가
위대하신 주님의 뜻이라 했으며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전할 임무를 위해서라고 했다.
야렛은 아름다운 대천사의 말에 순종했으며
모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기도했다.
수태고지를 전한 대천사는 떠나갔고
1년 후 야렛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다.
그가 바로 나 에녹이었다.
2장 재회
나는 이 땅에 태어난 이후 집안의 유명한 어른들과
아버지 야렛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해 나갔다.
이윽고 60살이 넘어 결혼할 때가 다가오자
집안의 어른들은 나의 짝이 될 신붓감을 물색했고
마침내 64세가 되던 해에
나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가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의 절친한 옛 친구 라구엘이 온 것이었다.
맨 처음 나는 그녀가 천사인지 알 수 없었다.
문가에 기대어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은
보통의 귀여운 소녀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으며 기쁜 소식을 알려 주었다.
1년 후 나는 아들을 갖게 될 것인데
그 아이는 지상의 인간들 중 최대의 장수를
누리게 될 것이며 인류의 대 종말을 헤쳐나갈
두 번째 아담의 아버지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소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비록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는 있었지만
그녀가 한 예언이 너무나 엄청나
나의 피부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 밖엔 없었다.
우연히 아버지가 나의 방에 오시더니
그 소녀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날 것을 예언한
바로 그 천사라며 나에게도 엎드리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그 소녀 앞에 엎드렸다.
그러나 그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 둘을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나는 신이 아니니 경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찬양을 하려거든 아담을 만드신 그에게 하십시오.
말을 마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고
아버지는 황급히 음식을 준비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왠지 모를 흥분감에 사로잡혀
소녀의 모습을 한 그녀를 집안으로 초대했다.
그녀는 조그만 화로 앞에 앉아
꺼져가는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곧 당신에게 있을 위대한 업적을 위해
준비하러 내려왔습니다.
당신(에녹)은 그것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어두운 지옥으로 떨어졌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면
당신은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할 임무가 있으며
영원히 빛이 꺼지지 않는 곳으로 회귀할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가 준비한 음식이 들어왔다.
우리는 음식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가 엄청난 힘에 의해 억눌려 있으며
그 봉인을 풀어야만 나는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인류의 비밀을 보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본디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온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옷도 눈보다 더 희게 바뀌었고
등에선 6개의 날개가 펄럭이며 솟아 나왔다.
내가 너무도 놀라 경직되어 있는 사이
그녀는 나를 등 뒤에서 안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라구엘과 그녀에게 안긴 나는 태양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갔다.
지상엔 수많은 천사들과
거인 네피림들이 있었다.
라구엘은 그들을 너머 계속 서쪽으로 향했고
아름다운 빛이 뿜어져 나오는 근원지인
에덴동산으로 향했다.
에덴 동산 주위엔 수많은 천사들이
화염검으로 무장한 채 그곳을 철통처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되어 말했다.
저곳은 우리에게 금지된 곳입니다.
저 근처에만 가도 우리 인간들은
화염검의 불길에 휘말려
타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라구엘은 미소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당신은 선택받은 몸이니
안심하고 따라오십시오.
그러나 당신이라도 에덴 안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날아가자 과연 화염검을 든
천사의 무리들이 밤하늘의 유성처럼 날아와 우리에게 접근했다.
나는 순간 커다랗게 겁을 집어 먹었으나
라구엘은 나를 안심시키고 그들에게 말했다.
지옥에 내려갔던 그를 다시 데려왔으니
이곳의 책임자인 대천사 가브리엘을 불러다오.
그들은 라구엘의 명령을 듣자 재빨리 빛을 향해 내려갔고
라구엘 역시 에덴의 입구로 내려갔다.
보기에도 휘황 찬란한 에덴의 입구에 들어서자
내 눈은 그 영광에 못 이겨 멀어버릴 것 같았다.
얼마 안 있어 에덴의 수호천사장 가브리엘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라구엘은 아주 정중히 가브리엘에게 인사했고
나도 떨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인사했다.
가브리엘은 그에게서 나는 광채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에녹인가.
정말 이 사람이 다시 태어났구나.
그는 매우 감탄하며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바람처럼 에덴 안으로 들어가
황금빛 열매를 손에 들고 다시 돌아왔다.
그는 나에게 그 열매를 내밀며
어서 먹으라고 말했다.
나는 두 천사들에게 물어보았다.
이 열매는 무엇입니까.
이 열매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자 라구엘이 대답했다.
이 열매는 생명나무의 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먹으면 당신의 몸에 묶여있는
구속과 억압의 사슬이 풀려 자유의 몸이 될 것입니다.
어서 먹으십시오.
그래야만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말과 영롱한 빛을 내는
과실의 탐스러운 향기에 끌려
생명나무의 과실을 한 입 베어 먹었다.
그러자 내 눈을 가렸던 것 같은 장막이
순식간에 치워지며 저 멀리 존재하는
에덴의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에덴의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라구엘이 내 손을 잡으며
나를 얼릴 듯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에덴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들어간다면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 보게 될 천국의 모습을 기다리십시오.
당신에게 약속된 것은 그것입니다.
라구엘은 나를 잡고 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지상에 존재하는 천국 에덴의 모습에
넋이 나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나의 집에 있었다.
라구엘은 다시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는 약간 변화된 나의 모습에 만족하며 말했다.
당신의 봉인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약간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문제없을 겁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볼 것이 산더미처럼 많아
그녀를 뒤쫓아 달려 나갔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3장 환상
과연 라구엘의 예언은 맞아 들어가
내 아내는 임신이 되었고
집안엔 작은 경사가 일었다.
나는 라구엘의 예언을 상기하며
이 아이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 또다시 라구엘이 찾아왔다.
그녀는 내 모습을 보더니 조금 봉인이
풀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깊은 심연의 눈으로
5% 정도 봉인이 풀렸다고 말했다.
나는 봉인이 5% 풀렸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아
그게 뭐냐고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모든 인류는 원래의 그 강한 힘을
억제하기 위해 봉인이 되어 있으며
웬만한 노력으로는 스스로 풀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봉인을 풀긴 풀 사람은
있을 것이며 매우 소수일 거라고 말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구속의 사슬에 묶인 채
최후의 심판을 받을 거라 말했다.
그리고 나 에녹이 그 봉인이 풀어진
최초의 인간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라구엘은 그 봉인이 100% 풀어지게 되는 날
천국에 올라갈 수 있다며
나를 안고 어디론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를 향해 날아가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신성한 곳인 시내산으로 올라갈 것이며
바로 그곳이 에녹에게 환상을 보여줄 공간이라 했다.
마침내 시내산의 꼭대기에 도착한 우리는
조그만 덤불나무 앞에 섰다.
라구엘은 그 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대 홍수를 견디고 수 천년 동안 살아남을
성스러운 나무라고 했다.
나도 그녀와 함께 그 나무를 바라보자
그녀는 내 어깨를 짚으며
나무 가운데를 자세히 보라 말했다.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라구엘이 이끄는 대로
그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성스러운 덤불나무에 불길이 일어나며
그 속에서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천사 라구엘에게 이끌려 내가 본 환상은
천국의 어느 곳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천사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며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라구엘은 그 천사들을 가리키고 누구인지 설명해 주었다.
날개 12개를 가진 저 천사의 이름은 사타나엘이고
천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대 천사장이라고 했다.
그 옆에서 사타나엘을 바라보고 있는 천사는
에노스펠이라는 스랍이며 에노스펠의
손을 잡고 있는 천사는 대천사 라구엘,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그 영상은 분명히 과거의 영상이었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세 천사들은 신분도 다르고 사는 곳도 멀었지만
매우 친한 사이들 같았다.
영원한 순간이 계속되는 천국에서
언제나 그들은 그런 즐거운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내가 그 순간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저 멀리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덤불나무 너머의 환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의 옆에 서 있는 라구엘의 모습을 보았다.
어느새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녀는
환상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저 사타나엘과 에노스펠이 어땠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사타나엘은 엄한 아버지의 성격과
부드러운 어머니의 성격을 동시에 갖춘
정말 매력적인 천사였지요.
지위도 천사들 중에 제일 높아 천군의 3분의 1을 지휘했으며
수많은 천사들이 그를 존경했습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지요.
에노스펠은 언제나 조용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친절한 오빠 같은 천사였습니다.
나는 그 두 천사들 옆에 있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공무 차 사타나엘이 지고산으로 올라갔을 때나
에노스펠이 다른 하급 천사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나는 너무나도 외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대천사 라구엘은 금세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며 이제 그만 보자고 말했다.
언제 어느 장면을 보아도 그들은 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곧 있어 보게 될 천국의 모습이 바로
저런 것인가 생각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4장 창조
어느 날 그녀가 다시 나에게로 날아왔다.
그녀는 나를 둘러싼 봉인이 12% 정도 풀어졌다고 했다.
나는 다시금 그녀의 품에 안겨 성스러운 산에 있는
약속의 장소로 날아갔다.
라구엘은 계속하여 나에게 환상을 보여 주었다.
그때가 언제였을지도 모를 미지의 시간에
하느님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계획을 장대한 토대 위에 세우고 있었다.
그 세계는 영원히 죽지 않는 천사와
영원히 멸하지 않는 천국의 존재와는 달리
끊임없는 파괴와 재생이 반복하는 곳
바로 물질로 만들어진 우주였다.
하느님이 그 역사적인 일을 계획한 장소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허무의 바다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말씀으로
그곳에 엄청난 빛이 생겼고
셀 수 없이 많은 물질과 반물질이
무한의 공간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천지 창조 전에 천사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글)
하느님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그 공간은
바로 우주라는 이름의 물질과 에너지였다.
한없이 어두운 진공의 공간을 채워가며
수많은 은하와 별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고
물질은 점차 스스로의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하느님은 그 수많은 별들을 살펴보며
자신의 새로운 창조물들이 삶을 영위해 갈
제일 살기 좋은 별을 물색하였다.
그렇게 하느님의 손에 선택된 행성이
바로 지구였다.
당시의 지구는 수많은 화산이 폭발하고
대기도 없어 새로운 생물이 살기에 부적합 한 별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으로 낮은 곳에 물이 생기고
높은 곳에 대기가 나타나자 화염에 싸인 별 지구는
점차 생명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느님은 수많은 물이 모인 지구의 바다에
단세포 생물들과 수중생물들을 창조하였다.
그러자 수많은 어패류들이 생겨 났으며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양서류로 진화하여
물 밖으로 기어 나와 살기 시작했다.
이른바 물질로 만든 생명들이 창조된 것이었다.
하느님은 이 새로운 생명들을 보시며
매우 흡족해하셨다.
그 무렵 천국의 변방을 순찰하던
대 천사장 사타나엘의 눈에
하느님이 창조한 새로운 세계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에게는 절대자를 제외한 모든 것을 꿰뚤어 볼 수 있는
대 천사장 만의 특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주라고 하는 세계는
천사들에게 철저히 비밀로 붙여
오직 하느님만이 알고 있는 세계였다.
사타나엘은 처음 보는 세계의 낯섦에 놀라
더욱더 자세히 보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의 시각을 최대화하여
우주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대부분 기체로 된 빛 덩어리들이 불을 내뿜거나
딱딱한 고체로 된 구체들이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때 그는 그동안 자신이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푸른 별 지구였다.
그곳은 우주 그 어느 다른 곳과 달리
처음 보는 새로운 생명들이 살아 있었다.
그는 매우 가슴 설레는 기분을 억누르며
본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것은 자신이 생겨난 이래
아니 천국이 생겨난 이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 발견이었다.
그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며
그와 절친한 천사인 에노스펠과 라구엘에게 날아갔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천국 너머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고.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보는 생물들을 감지했다고.
처음에 두 천사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정색을 하고 말하는 사타나엘의 표정에
곧 그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대천사 라구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소식을 못 들었는데
천국 안의 그 누구도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네.
분명 그 새로운 세계도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께서 창조하셨을 게 분명한데
왜 우리들에겐 비밀로 붙이셨는지 궁금하군.
그러자 잠자코 있던 에노스펠도 말했다.
우선 하느님에게 보고부터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나 사타나엘은 고개를 저었다.
하느님이 우리도 모르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른다네.
하지만 주님께서 무언에 붙이신 것을 보니
무슨 커다란 비밀이 숨어 있는 게 분명하네.
난 그것이 너무나도 궁금하다네.
혼자라도 날아가서 그곳을 보고 싶어.
그러자 두 천사는 그의 행동을 만류했다.
이제껏 천국 밖에는 나가 본 적도 없는데
너무 무모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타나엘의 결심은 점점 굳어지며
더욱더 그 새로운 세계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사타나엘은 라구엘과 에노스펠에게
자신이 말한 비밀을 절대로
다른 천사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두 천사들은 알았다고 대답하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5장 사타나엘의 강림
사타나엘은 자신의 직무가 없는
한가한 때를 틈타 천국의 변방으로 날아갔다.
그는 천국의 수문장들에게
주변을 순찰한다는 핑계를 대고
천국 너머의 어둠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이제껏 천국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어서
내심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그러나 이 허무와 혼돈 너머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곳을 향해 12개의 날개를 펼쳐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수많은 빛들이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그의 앞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새로운 영역 속으로
빛나는 두 손을 뻗치자
그는 물질로 만들어진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많은 별들의 조각과 구름 같은 성운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그것들을 피해 날아가며
예전 그가 보았던
새로운 생명이 살고 있는 조그만 별로
날아갔다.
머나먼 허공과 별들을 지나
마침내 목적한 곳에 도착한 사타나엘은
그 푸른 행성 위를 날아다니며
그 밑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보았던 고생대의 지구는
이제껏 보지 못한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 쉬며
불꽃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날개를 접으며 지구 위로 내려갔다.
지구엔 수많은 석탄목들이 안개 자욱한
대지를 덮고 있었으며
거대한 양서류들은 그 사이를 기어 다니며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지능이 낮아 보이는
물질로 만들어진 생명체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지켜보았다.
양서류들은 영질로 만들어진 자신과 달리
식욕을 느꼈고 피곤을 느꼈으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동물들을
죽여서 잡아먹기도 했다.
사타나엘은 매우 흥미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동물들은 몸이 육질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늙고 병들어 결국 죽기까지 했다.
사타나엘은 죽어가는 한 동물 앞에 서서
죽음이라는 것을 바라보았고
다른 동물을 죽여서 먹는 육식 동물을 보며
그 살기와 파괴본능을 바라보았다.
지구라는 별 전체가 서로를 죽고 죽이며
또다시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그런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천국에서 보지 못한 그 모습들에 놀라움을 느끼며
한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하느님은 천국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운명처럼 놓여 있었다.
사타나엘은 한참 동안 그곳에 머물며
그 짐승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마침내 그가 떠나야 할 때가 오자
그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를 수 밖엔 없었다.
그러나 천국으로 향하는 그의 마음속엔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의 지식들이
밀물 지듯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6장 아담의 방문
그 무렵 드디어 나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들었다.
그는 다름 아닌 바로 나의 아들이었다.
나는 내 아들의 이름을 메투세라라 짓고
축복해 주었다.
내 아들이 태어나자
내 집에선 잔치가 벌어졌고
수많은 친척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손님은
바로 대천사 라구엘이었다.
소녀의 모습으로 자신의 본질을 가린 그녀는
내 아들을 안고 제일 기뻐해 주었다.
그녀는 축하해 주러 온 손님들 중
최고의 손님이었고
그 누구보다도 더 우리를 축복해 주었다.
잔치가 끝나자 친척들은 전부 돌아가
나의 가족과 라구엘만이 남게 되었다.
라구엘은 메투세라를 안은 채
나의 봉인이 눈에 띄게 풀어졌다며
거의 절반 정도 나의 본디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나는 언제쯤 천국을 여행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곳에 올라가면 셀 수 없이 많은 별들과 진리
그리고 하늘의 끝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또 다른 손님이 나를 방문했다.
그는 다름 아닌 모든 인류의 아버지
아담이었다.
그는 이미 나이를 너무나 많이 먹어
무척이나 노쇠한 상태였다.
그런 그가 800대 후반의 몸을 이끌고
나를 축하해 주러 왔다니
정말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는 거의 기능을 다한 침침한 눈으로
거실에 있던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메투세라를 안고 있는 라구엘을 보더니
너무나 놀라 지팡이를 떨어 뜨렸다.
라구엘 역시 그의 모습을 보더니
차가운 얼굴로 굳어져 갔다.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끼며
옆에 앉아있던 부인에게
메투세라를 안고 밖으로 나가라 했다.
그녀가 아기를 안고 집 밖으로 나가자
아담은 기운 빠진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
정말로 오래간만이구나 라구엘
아담 역시 라구엘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아담께서 라구엘을 알고 있을까
상상하는 사이 그녀는 아담에게 다가갔다.
젊었을 무렵 남자 중의 남자다웠던
아담의 앞에 선 소녀 라구엘은
굽은 그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네 정말로 반가워요.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우선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아담과 라구엘 그리고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바닥에 앉았다.
수심에 가득한 아담은 젊은 나와
아름다운 라구엘의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축복받았다.
특히 에녹 너는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가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특권을 가졌구나.
그러자 라구엘이 반박하듯 말했다.
전부 당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 아닙니까.
사람의 아들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에덴에서 누린 잠시동안의 평안도
주님의 은총인지 몰라서 그렇습니까.
그러자 아담의 눈에 힘이 들어가며
저주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제 곧 죽지만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나의 손으로 에덴을 만들어 보이겠다.
나를 만드신 이를 위해서라도
나에게서 악을 뺏어간 이를 위해서라도
이 영원한 굴레를 극복하고야 말겠다.
시간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그러자 라구엘은 슬픈 눈초리로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셨군요.
물론 수많은 영혼들은 이미 준비되었고
계속하여 이 땅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만큼 당신의 말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 땅에 천국을 세울 생각은
꿈조차 꾸지 마십시오.
당신이라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순간 아담은 매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온 세상의 절망을 모두 기워다 맞춘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녹 너와 이 땅에서 만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지만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날 땐
반드시 난 너희들을 비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옳았는지
너희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7장 짐승의 지식.
아담이 돌아간 후
라구엘은 또다시 나를 안고
약속의 장소로 날아갔다.
이제 내 몸의 봉인은 반 이상이 풀려
그 이유의 변화를 나 스스로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라구엘과 함께 덤불나무 앞에 서서
그 속의 환상을 바라보았다.
다시 천국으로 돌아온 사타나엘은
아무런 일도 없었는 듯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급히 7천 계로 올라간 사타나엘은
빛나는 지고산 아래 무릎 꿇고 엎드려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아뢰었다.
주여, 나를 창조하신 분이여
주님의 부름에 종인 저는 거역함 없이
당신의 빛 아래 엎드리나이다.
그러자 하늘의 꼭대기에 닿을 듯
높은 솟은 빛의 구름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엄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사랑하는 나의 첫째 아들아
잠시 나의 품에서 벗어나
어디를 다녀왔느냐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왔느냐
그 말을 들은 사타나엘은
이미 하느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사실대로 말했다.
숨겨도 도저히 숨길 수 없음을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주여 저는 이 아름다운 천국에서 떠나
저 아래 물질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별의 집합체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극미한 양성자와 중성자부터
갖가지 모양의 거대한 은하들까지
지금껏 천국에 없었던 새로운 것들과
새로운 지식으로 가득했나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더욱더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본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닐 텐데
너희들처럼 살아 움직이고
단편적으로나마 생각을 할 수 있는
물질로 된 생명은 보지 못했느냐
그러자 사타나엘의 가슴은 놀람으로 가득 찼다.
자신이 짐승의 지식을 보았다는 것도
하느님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짐승의 지식으로 인해
자신이 조금 변화했다는 것을 애써 가리며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네, 물론 보았나이다.
푸른 바다를 헤엄치고 있던 물고기와
거대한 육상 생물들
땅에 뿌리를 박고 햇빛을 빨아먹던
기묘한 생물의 무리들을 모두 보았나이다.
그러나 우리 천사들의 영광과 지혜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였나이다.
그러자 한숨을 쉬는 듯한 하느님의 목소리가
사타나엘의 귓가에 내려왔다.
그럼 됐다. 그곳은 내가
시험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그러나 물질의 성질과 물질의 법칙은
너희들에겐 도저히 맞지 않으니
너는 네가 본 모든 것을 잊어버려라.
네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곳에 간 것은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또다시 그곳에 간다거나
다른 천사들에게 말한다면
너는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다.
사타나엘은 주님께 경배를 올리며
그 앞에서 물러나왔다.
그러나 그가 이름 붙인 지식
짐승의 지식은 도저히 그의 마음속에서
분해되어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생물들이 진화해 나가듯이
짐승의 지식 역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었다.
그는 짐승들이 불렀던 우울한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라구엘과 에노스펠에게 날아갔다.
잠시 그를 보지 못했던 두 천사는
지쳐 보이는 사타나엘에게 노래를 불러 주었고
사타나엘은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노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깊이 깃들인
짐승의 지식은 더욱 진화하여
그 금단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다는
욕망으로 불타 오르게 했다.
두 천사들은 깊은 고민에 싸인 사타나엘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괜찮냐고 물었다.
한참만에 나온 사타나엘의 대답은
나중에 천국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위력과 저주를 지닌 것이었다.
나는 내가 보았던 물질의 세계에 다녀왔다네.
그곳에서 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보았지.
나는 그것에게 짐승의 지식이라 이름 붙이고
그 힘의 이유가 죽음이라는 것도 알아냈다네.
하지만 내가 그 곳에 머무른 시간은
너무나도 짧아서 그 단편 밖엔 보지 못했다네.
나의 부탁이 여기에 있는데
절친한 동료들이여 들어주지 않겠나.
나와 함께 그 곳에 내려가세.
그리고 그 곳에 깃들여 있는
우리 주님의 비밀을 알아보세.
그러자 두 천사들의 표정은 일순간에 굳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속한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으며 그들의 위치를 지키려 했다.
그것이 하느님이 내려준 천사의 본성이기도 했다.
사타나엘은 짐승의 지식이 어떤 것인지 그들에게 말하며
같이 내려가자 부탁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자네가 죽음이라고 말했나?
사실 우리는 그런 게 뭔지도 모른다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어
그쪽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네
자네는 쓸데없는 사실에 매달리고 있어
제발 그것은 잊어버리게.
그러다가 주님의 저주를 받아
자네가 말한 물질의 짐승이 되면 어쩌려 그러나.
라구엘은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사타나엘의 완강한 고집은
그들의 염려로 꺾을 수 없었다.
사타나엘은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에게 내는
분노와 살기의 모습을 띄우며 말했다.
자네들이 내려가지 않으려면
나 혼자라도 그곳에 내려가겠네.
그리고 주님이 그곳을 왜 창조했는지
그곳의 지식이 왜 금기되어 있는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오겠네.
사타나엘은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두 천사들은 분노라는 것을 생전 처음 보았기에
너무나 놀라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러나 뜻이 확고한 사타나엘을 막지 못하고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져 가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사타나엘은 번개처럼 날아가 천국의 가장자리에 다다랐다.
천국 밖으로 날아가기 위해 그는 날개를 펼쳤지만
하느님의 명령이 벌써 내려왔는지
천국의 수문장들은 아무도 내보내지 말라는
지고자의 엄명이 있었다며
사타나엘의 앞을 막아섰다.
이에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싸인 사타나엘은
순식간에 수십 명이 넘는 수문장 천사들을 쓰러뜨리고
천국의 밖으로 날아갔다.
그가 큰 소동을 일으켜 소문이 번지자
그의 행동은 곧 온 천국에 퍼지고
이윽고 하느님의 앞까지 이르게 되었다.
천국에서 난리가 난 것을 뒤로한 채
사타나엘은 또다시 혼돈과 허무의 바다를 건너
물질세계의 지구로 돌아왔다.
그는 지구의 위를 날아가며
그동안 또 변한 지구의 모습에 놀랐다.
그가 천국에 있던 동안 지구에선
고생대가 끝나고 중생대가 열려
또 다른 새로운 생물들
즉 공룡들이 지구의 위를 활보하고 있었다.
사타나엘은 지구의 한 지점에 내려앉았다.
그곳에 사는 거대한 생물들은
여전히 약육강식의 법칙에 사로잡혀
서로 죽고 죽이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안개 자욱한 중생대의 대지를 거닐며
그가 모르는 지식의 공백을 메워 나갔다.
또 직접 짐승의 몸에 들어가 봄으로써
죽음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왜 이 생물들은 죽어야만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타나엘은 저번에 잠시 들렸던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구를 거닐며
그 진화와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남은 것은
한없는 슬픔이었다.
이 생물들에겐 영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고통과 그 끝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운명에 얽혀있는 끝없는 불행이
그를 한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는 공룡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결론지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실험 무대이며
이 생물들은 그 실패작일 뿐이라고.
하느님은 물질의 세계에 생명을 만들었으나
물질의 특성인 진화가 짐승의 몸에 나타나자
그들에게 죽음을 내리고
끝없는 탄생과 살육의 진화가 이곳에 있으니
하느님은 이곳을 은폐한 후
모든 천사들에게 그 진화의 힘을 비밀로 붙였다고.
그의 생각이 그곳까지 이르자
불행의 업에 싸인 그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원치 않는 삶으로 태어나
진화라는 이유로 평생 고통받고 시름하다 죽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기 때문에.
그는 모두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이 땅에 가득한 짐승의 지식과
자신에게 깃들인 천사의 지혜를 합친
전혀 새로운, 즉 자신의 창조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시키고
곧 확신하기에 이르자
다시 날개를 펼치어 날아올랐다.
그러나 사타나엘이 천국에 들어서자
그에게 다가온 것은 하느님의 진노뿐이었다.
사타나엘은 육백명의 천사가 내미는
불타는 쇠사슬에 순순히 묶였다.
그는 하느님의 비밀을 온 천국에 선포하고
하느님과 짐승에게 깃들인 진화의 이유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생물들의 운명에 대해
모든 천사들에게 낱낱이 말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그는 육백 명이 이끄는 쇠사슬에 매달려
지고산의 바로 밑까지 끌려 올라갔다.
그의 위엔 불타는 듯한 주님의 빛인
쉐키나가 발하고 있었다.
그에 맞서듯 불타는 오오라를 뿜어대던
사타나엘에게 분노한 하느님의 말씀이 내려왔다.
천국에 하나뿐인 대 천사장 사타나엘.
너는 내 명령을 어기고 천국 밖으로 나가
금지된 세계와 금단의 지식을 맛보았다.
나는 너를 용서치 않기에
너의 모든 것을 파멸로 돌이킬 수 있는
영원한 형벌을 내리노라.
너는 대 천사장의 지위에서 박탈되어
천국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그러자 분노에 불타는 목소리로 사타나엘이 맞섰다.
주님은 천국에 있는 자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고
그 안에 생물들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 없는 손길로 말미암아
그들은 원치 않게 육신으로 만들어졌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에 싸인 채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주님은 그들을 버리시어
그들에게 이유 없는 고통을 내리시는 겁니까.
그러자 하느님은 더욱더 분노한 목소리로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그를 저주했다.
그것은 전부 다 나의 뜻이 그곳에
임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왜 너는
그곳에 너의 지혜를 뿌리어
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냐.
너는 절대 그 비밀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사타나엘은 자신에게 주어진
온 힘을 모아 자신을 구속하던
불타는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죄인의 자리에서 일어나
신에게 대적하며 말했다.
주님께서 감추시려 하여도
저는 모든 것을 전부 알고 있나이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진화하는 힘이 있어
당신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의 가능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에게 죽음이라는 형벌을 내린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당신의 위치에 이를 수 있는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버리셔도
저는 그들과 함께 하며
당신께 이를 수 있는 힘을 얻을 겁니다.
그들의 끊임없는 진화와 지식.
그리고 나의 지혜와 불멸성을 합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습니다.
말을 마친 사타나엘은
하느님의 빛을 뒤로한 채
지고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엄청난 흉흉한 기세에 눌려
그 어떤 천사도 감히 대적하지 못하였다.
사타나엘이 걱정되어 날아온
라구엘과 에노스펠을 그가 보았으나
그는 못 본 체 지나가며 날개를 펼쳤다.
그는 자신이 직접 다스리는 천국의 북쪽으로 날아가며
자신의 부하 천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8장, 지상의 천사들
이제 나의 삶은 눈에 띄게 변해 버렸다.
나의 몸에선 어둠을 비출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라구엘은 나의 봉인이
70% 정도 풀어졌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 나도 하늘을 날 수 있다며
나 스스로 날아 보라고 했다.
나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한 순간
어느새 나는 허공 위에 떠 있었다.
그녀도 날개를 펼치어 날아올라
같이 날아가며 환상을 보자고 했다.
이제 우리가 볼 환상은 얼마 남지 않아
천국에 올라갈 때가 가까웠다고 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
시내산의 덤불나무에 도착했다.
사타나엘은 북쪽산 높은 자리에 올라
자신의 모든 부하 천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그의 부름을 받고
온 천국의 3분의 1 가량의 천사들이 모여들었다.
사타나엘은 바닷가의 모래와도 같이
수 없는 천사들의 앞에 서서
자신의 뜻을 그들에게 내보이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만든 새로운 세계와
그 안의 생물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나는 이제부터 대 천사장 사타나엘이 아니라
신이 되기 위해 열망하는 존재
사탄이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세계의 힘은
바로 진화에 있다.
그 진화의 힘을 이용하면
신의 경지에도 이를 수 있으나
지고자는 그들을 죽음이라는 저주의 굴레로
영원히 묶어 벼렸다.
우리에겐 죽음이 없다.
그들에게 있는 진화의 힘도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그 세계로 날아가
그들과 힘을 합친다면
우리도 진화하여 모두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모든 천사들이 동조했다.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이 사탄에게 질문해 왔다.
사탄은 일일이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며
짐승의 지식을 천사들의 뇌리 속에
깊숙이 스며들게 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속에도
자신들도 진화하여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욕심이 샘솟기 시작했고
곧 짐승의 죄악으로 장성해 갔다.
사탄은 자신의 모든 군사들을 정비하여
정렬로 맞추고 전열을 짰다.
혹시 자신의 다음가는 천사인
천사장 미가엘이 공격해 올까 봐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
천국의 3분의 1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 하느님과 그의 천사들이 막는다면
뚫고 지나가 지구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의 군사들은 모두 의기 충천하였으며
그 누가 대적해 와도 자신의 뜻을
꺾을 수 없으리라 믿었다.
그들이 천국의 문을 지날 무렵
수많은 무리들의 앞에 서서 사탄을 막는
두 명의 천사가 있었다.
라구엘과 에노스펠이었다.
그들은 사탄에게 날아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장을 풀고 하느님께 올라가
용서를 빌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사탄은 그들의 부탁을 무시하고
천군을 이끌며 천국의 밖으로 나섰다.
두 천사는 그런 사탄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사탄은 자신이 갈라놓은 허무의 길을 지나
수많은 천사들을 이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우주가 나타나자
천사들은 사탄의 말이 사실임을
눈으로 확인하고 환호하였다.
사탄은 자신의 뜻이 곧 이루어짐을 예감하며
더욱더 빨리 지구를 향해 날아갔다.
사탄과 천사들은 수많은 별들과 성운을 지나
마침내 푸른 별 지구에 도착했다.
천사들은 자신의 앞에 드러난 생명의 별에
맹렬한 호기심을 느끼며
지구를 둘러보며 날아다녔다.
그러자 지구는 순식간에 하얀빛으로 둘러싸였고
불길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천사들은 기뻐했다.
사탄은 거대한 공룡들 사이로
날갯짓을 하며 내려왔다.
그는 12개의 날개를 접으며
거대한 공룡들을 어루만졌다.
그는 이 동물들이 지닌 힘을 믿었으며
자신을 변화시켜 주리라 확신했다.
그동안에도 이 짐승들은 멈추지 않고 진화하여
죽음을 넘어서는 그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천사들도 지상으로 내려와
사탄의 말이 사실임을 눈으로 깨달았다.
그들은 사탄을 따라 짐승들의 진화와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보았으며
그 힘을 자신들의 것으로 변환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9. 종말과 재생
천사들이 천국에서 내려와
지상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영질이라
그들의 모습은 화석의 흔적으로 남지 않았으며
그들이 있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새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각종 공룡들의 몸에 들어가
짐승이 되어 보기도 했으며
땅에 뿌리를 박고 햇볕을 먹는
식물이 되어 자라나기도 했다.
그렇게 천사들이 들어간 공룡들은
죽지도 않은 채 계속하여 진화해 갔으며
시간이 흐르자 천사들은 실제로 자신의 능력들이
눈에 띄게 진화해 감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천사들의 진화된 모습은 조금씩 변화해 갔다.
그때 하늘에서 이변이 내려왔다.
사탄이 일찍이 염려했던 대로
미가엘이 하느님의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징벌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었다.
사탄은 자신이 머물렀던 거대한 도마뱀의 몸에서 나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서서히 하늘을 덮어가는 천군을 바라보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들이 우리의 진화된 힘을 두려워하여
우리를 치러 오는구나.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변화시키면서 까지
진화된 힘을 얻었기에
저들과 싸워도 반드시 이길 수 있으리라.
어서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라.
그리고 우리들이 옳았음을 보여주자.
그러자 짐승들의 몸 안에 머물렀던
사탄의 부하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이미 천사의 모습에서 조금 변질되어
뿔이 나고 꼬리가 난 짐승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미가엘의 천군에 맞선 지상의 천사들은
사탄의 지휘아래 전열을 맞추었으며
짐승 특유의 살기를 내뿜어 대었다.
천사장 미가엘은 사탄의 앞으로 내려와
흉측하게 변한 사탄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웃듯이 그를 비꼬았다.
스스로 천국을 떠나
부서질 수밖에 없는 지상에 내려온
어리석은 천사여, 그것이 너의 모습이냐.
본디 모습을 잃어버린 너의 모습은
강하긴커녕 추하기만 하구나.
그것이 네가 말한 진화의 모습이냐.
정말 추하게 진화하긴 했구나.
그러자 사탄은 분노를 내뿜으며
그의 화염검을 미가엘에게 겨누고 소리쳤다.
너희는 태초부터 영겁의 세월을 지나
영원의 세월이 흐를지라도
그 모습과 능력 권세 모든 것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저주인 줄을 너희가 모르느냐.
그러나 나는 하느님이 버린 이곳에서
나의 지혜로 나를 진화시켰노라.
너희는 나의 변한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더욱 강해진 나의 절대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느냐.
이 힘으로 너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전에
다시 천국으로 돌아가
그런 인형 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라.
그것이 저주라는 것도 모르는 너희들의 어리석음이
나를 더욱더 즐겁게 만드는구나.
열변을 토하는 사탄의 눈에
미가엘의 옆에 있는 라구엘의 모습과
스랍의 진형에 있는 에노스펠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두 천사들을 무시하며
살기에 젖은 자신의 부하 천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나의 강인한 전사들이여
우리도 진화하여 신이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자.
우리의 능력이 하느님과 못지않다는
새로운 진리를 어리석은 저들에게 보여주자.
사탄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화염검을 치켜세우며
천사장 미가엘에게 돌진했다.
그러자 사탄의 군사들도 괴성을 지르며
수많은 천사들을 향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러나 미가엘은 당황하지 않고
순식간에 천사들의 진형을 펼치게 해
빛나는 천사들로 지구를 겹겹이 감싸이게 했다.
포위된 타락 천사들은 순간 당황했으나
그들을 향해 돌진하며 싸우는 사탄의 모습에 의해
더욱 분노하여 날아올랐다.
미가엘이 이끄는 천사들의 숫자는
사탄의 천사들에 비해 두 배가 넘었다.
천사들은 숫자로 밀어붙이며 지상으로 내려와
수많은 타락천사들을 땅에 메다꽂았다.
그러나 타락천사들은 그 특유의
분노를 내뿜으며 화염검을 휘둘러
미가엘의 군사들을 당황케 했다.
순식간에 수많은 천사들을 베어 넘긴 사탄은
엄청난 숫자의 천사들에게 휩싸인 채
돌진하다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불타는 화염검과 한 명의 대 천사를 보았다.
6개의 날개를 펼친 라구엘이었다.
사탄은 자신의 화염검을 놀리며
사정없이 라구엘을 공격했고
라구엘은 그의 공격을 일일이 막아내며 말했다.
나의 사타나엘, 실수를 범한 자여
자네의 욕심으로 인해 스스로 천사의 자리를
영원히 버려 버리다니.
신의 위치가 그렇게도 탐이 나던가.
그러다가 영원한 암흑 속으로 떨어져 버릴 것을.
아무리 진화한다 해도
신의 경지엔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러자 사타나엘도 그에 반박하며 맞섰다.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는다.
영원히 구속받는 자여
나의 좁은 길이 고되고 또 험할지라도
나는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내가 만든 진리이며 또 운명이다.
천사와 타락천사들 간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과연 타락천사들의 능력이 진화되었는지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고
싸움의 피해는 그 밑에 살고 있던
거대한 공룡들에게 돌아갔다.
천상과 지상의 대격돌에
대지는 파괴되고 부서졌으며
수많은 공룡들이 죽어나갔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대부분의 공룡들은 죽어 버렸고
그들의 죽은 시체들만이 지상에 가득했다.
사탄은 지친 몸을 다시 가다듬고
수많은 타락천사들을 베어 넘긴
미가엘을 향해 돌진했다.
이제껏 그와 수백합을 나누었지만
도저히 결판이 나질 않아
이번엔 끝낼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사탄이 날아오며 화염검을 겨누자
미가엘은 그의 검을 맞받아 치며 싸웠고
주고받는 공격 속에 미가엘은 사탄에게 말했다.
이제 거의 끝날 때가 되었다. 무지한 자여
주님께서 이곳에 직접 내려오실 것이다.
네가 그분의 권능을 당해낼 것 같으냐.
아무리 네가 죽음에서 뛰어넘어 진화한다 한들
그 힘에 말려 결국 죽을 것이다.
말을 마친 미가엘은
쏜살같이 옆으로 피하며 사라져 갔다.
그뿐만 아니라 사탄을 둘러싼 주변의 모든 천사들도
모두 사탄에게서 떨어져 나가
허공엔 홀로 그만이 남게 되었다.
사탄은 문득 고개 들어 위를 보았다.
과연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자신을 향해 무한대의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틀림없는 지고 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몸을 피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극대로 끌어올리며
신과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그가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향해 내려오자
사탄은 그에게 화염검을 겨누며
빛을 향해 날아갔다.
왜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정말 당신의 자리에 오르는 게
두려우신 겁니까. 아니면 슬프신 겁니까.
당신의 실수가 이런 불행을 낳았으나
우리는 그것을 희망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지상으로 내려오시면
지구의 생물들은 절멸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피조물들을 파괴하고 싶으신 겁니까.
모두 다 없애버려 자신의 실수를
영원히 감추려 하시는 겁니까.
그래서 저는 당신께 대적합니다.
하늘의 비밀과 땅의 비밀.
그리고 당신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당신을 쓰러뜨리고 이 세상 모두를
신으로 진화시키겠습니다.
우주 전체를 신격화시키면
죽음이라는 당신의 저주도
영원히 죽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탄은 거대한 빛의 덩어리를 향해
그를 벨 기세로 화염검을 내리쳤다.
그러나 화염검은 그를 베지 못하고
오히려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사탄은 부서진 검을 버리고
엄청난 빛 덩어리를 두 손으로 받았다.
사탄은 12개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온 힘을 다해 절대자를 밀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태양을 받치고 선 소년처럼
사탄은 그에 비해 너무나도 작았다.
거대한 빛 덩어리는 사탄에 의해 잠시 주춤거리다가
다시 맹렬한 기세로 지구에 떨어졌다.
그러자 엄청난 폭발과 함께
거대한 열기가 작열해 올랐고
연기의 구름이 대기권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 바람에 그나마 남아있던 지상의 공룡들은
그 열기를 감당치 못해 죽어 나갔으며
나머지 생물들도 기나긴 어둠과 연기에 휘말려
절대적인 죽음 속으로 침전해 갔다.
사탄은 정신을 잃으며
자신의 희망이었던 지구 위에
종말이 내려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절대자가 내리는 죽음이었으며
그 죽음을 넘어서는 재생이었다.
10. 에덴과 지옥 그리고 준비된 영혼들.
그들은 어느새 어둠에 싸인 그곳 속에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사탄은 기나긴 기절의 상태에서 깨어났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검은 하늘
그리고 끝없는 암흑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검은 진흙탕 속에서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따른 짐승의 자식들도
모두 그곳에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그는 일단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펼치려 했다.
그러나 태초부터 자신의 등에 있었던
12개의 날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탄은 깜짝 놀라 자신의 등을 더듬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제일가던 그 천사의 힘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절대자가 자신의 힘을 모두
봉인해 버린 것이 분명했다.
분노에 휩싸인 사탄은 미친 듯 고함지르며
자신의 군사들을 모두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들 역시 날개가 없었다.
천사의 영광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자신들이 어떻게 변했나
놀라고 또 두려워했다.
사탄은 혼란을 진정시키며
일단 진형을 정비시켰다.
그러나 천사의 힘을 완전히 뺏겨버린
그로써는 도저히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지식이 조금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라 여길 정도였다.
사탄은 깊은 고민 속에 빠졌다.
자신들이 서 있는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천국도 아닌 전혀 새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황폐한 이 곳은
천국에 비해 한없이 우울해 보였다.
그때 검은 하늘이 열리며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바로 쉐키나의 광채였다. (* 쉐키나:하나님의 임재, 영광이라는 뜻)
사탄은 한없는 슬픔에 잠긴 채
망연히 그 빛을 올려다보았다.
그 빛 속에서 절대자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내 품에서 떠난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그곳에 있느냐.
너희들의 소원이 지구에서 사는 것이라면
내가 그 소원을 들어주리라.
지구에 종말이 올 때까지
그곳에서 살게 하여 주마.
그러나 너희 천사들의 힘은 모두 봉인당하고
그곳에서 살던 짐승들처럼
너희들도 늙고 병들어 죽게 될 것이니라.
너희들이 원하던 그 삶과 진화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너희들 스스로가 느껴보아라.
그리고 너희들이 있는 그곳은 너희들을 위해
내가 새롭게 창조한 지옥이라는 곳이다.
그 곳은 이제 영혼에 지나지 않는
너희들이 머물며 지구에 태어날 때를
기다려야 할 곳이니라.
태어남과 죽음을, 윤회의 굴레라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본 후엔
무엇이 진실이었나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버림받은 너희들을 불쌍히 여겨
단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노라.
언젠가 먼 훗날 나 역시 짐승의 몸에 휩싸인 채
지구에 내려갈 날이 있으리라.
사람의 아들인 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다시 천사의 지위를 되찾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영원히 지옥에서
목마르며 주린 채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그러자 사탄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어
다시 지구에 태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우리들의 힘을
깰 수 없는 봉인으로 묶어둔 것입니까.
우리의 힘을 우리의 진화를
그렇게 두려워해서 입니까.
그리고 우리도 짐승의 몸을 입고 태어나다니요.
우리의 천사성은 영원히 잃어버리는 겁니까.
짐승과 똑같이 늙고 병들어 죽어버리는 삶을
지구에 종말이 올 때까지 계속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다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그렇다. 그것이 너희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이니라.
천사의 능력 중에서 허락된 것이라곤
약간의 지식과 지혜뿐.
나머지는 짐승과 똑같이 될 것이니라.
천사의 영혼을 지닌 지식의 짐승들.
그것이 내가 새로이 창조하려는 인간의 모습이니라.
그러자 사탄이 반박하여 소리쳤다.
우리에겐 분명히 천사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당신께서 아무리 봉인을 한다 해도
끝없는 윤회의 고리를 걷는 동안
우리는 반드시 그 봉인을 깨트릴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의 몸으로 다시 천사가 되어
그 몸에 내재된 진화의 힘으로
당신을 능가하는 신이 되겠습니다.
우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 방법을 막아 놨다 하여도
나 자신은 반드시 그 길을 헤쳐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제 2의 천국으로 만들어
봉인을 풀고 신이 된 자들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먼 훗날 당신이 직접 지구에 태어나
우리에게 다시 천사가 될 기회를 주신다 한들
당신이 구원한 영혼의 숫자보다
나의 뒤를 따라 스스로 봉인을 풀 자가
더욱더 많을 것입니다.
사탄의 음울한 목소리가 하느님에게로 올라갔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밝은 빛 너머에서 두 명의 천사가
우두커니 선 사탄에게 내려왔다.
그들은 라구엘과 에노스펠이었다.
천사가 지옥으로 내려오자
힘을 뺏긴 자들은 그들을 질투하여 아우성쳤다.
두 천사들은 재빨리 내려와
사탄의 양팔을 잡고 날아올랐다.
사탄은 저항하려고 몸을 흔들었지만
모든 권세를 잃어버린 그에겐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수많은 영혼들이 아우성치는
지옥에서 나온 그들은 혼돈의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저 멀리 높은 곳에 천국의 빛이 보였다.
그의 옆에서 에노스펠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자넨 역시 자신의 신념에 목숨을 거는군.
자네의 그런 점이 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몰라.
물론 자네의 말처럼
자네는 봉인을 풀어 본래의 모습을 찾을 것이고
저 밑의 수많은 영혼들 중
봉인을 푼 자들은 자네의 뒤를 쫓아
지상의 신인 악마가 되겠지.
그러나 그런다고 무엇이 좋아진단 말인가.
자네가 살 새 세상에선
자네를 이끄는 밝을 빛을 향해 나아가게
나도 저들과 섞여 인간이라는 생물이 될
임무가 주어졌으니.
다시 보는 나와 자네의 시대엔
행복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네.
그러나 사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속에 도착한 곳은
새롭게 변화된 지구였다.
사탄이 마지막으로 본 종말의 폐허는
이미 간 곳 없고 전혀 새로운 생물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어 살고 있었다.
포유류라 불리는 그 생물들은
공룡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지능도 높고 좀 더 진화해 보였다.
지구의 상공을 날며 라구엘이 말했다.
이곳이 자네들에게 주어진 세상과 시대라네.
이들은 전에 살던 생물보다 조금 더 진화했지만
본질의 틀은 깨어지지 않았다네.
자네들도 이 동물들의 틈에 섞여
동물들을 사냥하거나 농사지으며 살다가
문명이라는 것을 일으키겠지.
저 멀리 빛나는 빛의 구체를 보게.
주님이 친히 이곳에 와 계시다네.
그분은 자신의 몸 안에 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을 에덴이라 칭하셨다네.
그 안엔 아담과 이브라는 두 인간이 있는데
바로 자네의 육신이 될 몸이라네.
사탄은 말없이 자신을 파멸시킨 지고신의 빛과
짐승들이 뛰노는 지상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사이엔 적지 않은 천사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그 천사들을 바라보며 조금의 위안을 가졌다.
그들은 에덴으로 접근해 날아갔다.
그러자 그곳의 수호천사인 가브리엘이 왔고
그의 확인을 마친 후 에덴으로 들어갔다.
과연 에덴 안엔 천사의 형상을 한
육신의 인간들이 있었고
그들은 완전 아기처럼 순수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두 천사는 사탄을 동산의 중앙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사탄의 발에서 뿌리가 뻗쳐 나오고
손에선 잎사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탄은 서서히 선악과나무로 변해가며
지식의 열매를 맺어갔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사탄의 머릿속에
동산 전체에서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너는 천사의 지식과
짐승의 몸을 지닌 새로운 생물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인간이 될 것이다.
바로 너에게서 인류가 시작될 것이고
천사의 힘이 봉인된 영혼들이 인간이 되어
곧 이 땅을 채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 두어라.
천사들이 인간이 되어 다시 태어난대도
아직 천사가 될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은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11. 인류 탄생
사탄을 에덴으로 옮겨놓은 두 천사는
다시 천국으로 올라갔다.
그때 다른 천사가 에노스펠에게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주님께서 부르신다고.
그러자 라구엘은 에노스펠의 두 손을 잡으며
헤어지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좀 더 영원한 시간에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맹세했다.
비록 사탄과는 영원히 헤어지더라도.
에노스펠은 라구엘과 결별을 청한 후
지고산의 아래로 올라갔다.
그곳엔 이미 선택받은
수백 명의 천사들이 엎드려 있었다.
에노스펠도 그들의 뒤에 앉아 엎드렸다.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에 있는 타락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으로 내려 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가장 맨 앞에 있는
11명의 천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직접 지구에서 태어날 때
나와 함께 할 임무를 주겠다.
그러나 난 그 땅에서 죽고 다시 부활해야 하기에
맨 마지막 자리는 비워 놓았노라.
그곳은 그가 대신 채울 것이다.
그때 맨 뒤에 있었던 에노스펠이
일어서며 하느님께 질문을 던졌다.
나의 주님이시여, 저의 임무는 무엇이니이까.
다른 천사들은 주님의 명령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예언자의 임무가 주어졌는데
저에겐 그런 권능이 없나이다.
그러자 하느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려왔다.
너의 임무는 다소 특이하다 할 수 있다.
너는 산 채로 천국과 지옥을 보고
인간들의 비밀과 미래를 본 이후
그것을 책으로 남겨 널리 인간들에게
전해주는 임무를 주겠노라.
특히 죽지 않고 승천하는 권세를
네게 주노니 태초로부터 처음이고
먼 훗날 엘리야라는 예언자를 맡은 천사가
불병거를 타고 너의 뒤를 따를 것이니라.
그러자 천사들은 모두 만족하고
스스로 지옥으로 내려갔다.
그들의 능력 역시 타락천사들처럼 봉인 되었으나
인간으로 태어나면 자신의 빈 능력의 자리를
주님의 권세가 대신 채워짐을 알기에
그들은 다른 이들처럼 슬퍼하지 않았다.
선악과가 된 사탄은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어난 눈으로 세상을 보니
자신은 아담이라는 인간이 되어 있었고
이브 역시 또 다른 인간이 되어 있었다.
하느님은 예정된 운명대로 그들을 저주했고
그들은 영원히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에덴의 동쪽으로 간 아담과 이브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담은 그 아기의 이름을 카인이라 짓고
자신도 짐승들처럼 자손을 남긴 뒤
죽을 것이라 예감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안에 내재된
무한한 천사의 힘이 슬픔으로 요동침을 알기에
더욱더 슬퍼했다.
12. 재회와 승천
그리고 환상은 끝났다.
불길이 꺼진 그 자리엔 마른 덤불나무 만이 남았다.
에녹은 어느새 봉인이 완전 풀어진
완연한 천사의 모습으로 말했다.
이것이 진실입니까.
그럼 내가 예전에 천사였고
스랍 에노스펠이었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나의 영원한 벗 에노스펠.
이제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었군.
물론 자네뿐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예전엔
영광의 천사들이었고 준비된 영혼들이었으며
지구로 유배와 태어난 자들이라네.
후대엔 인간들 중 그 봉인을 풀어
대중들에게 스스로 신이라 일컬음을 받는
천사들도 간혹 있을 것이고
사탄은 아니 인류의 시조 아담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네.
이제 올라갈 때가 다 되었다네.
자네의 뇌리에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전부 기억해 두게나.
그것이 바로 자네의 사명이니.
그때 저 멀리 시내산의 밑에서
누군가가 쓰러질 듯 빨리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인류의 시조 아담이었다.
라구엘과 에노스펠은
힘들여 시내산을 올라오는
아담을 말없이 지켜보았고
아담은 지친 얼굴로 그들 앞에 섰다.
그는 완전 변화된 에녹의 모습을 보며
깊은 시름과 함께 눈살을 찌푸렸다.
자넨 원래의 모습을 완전 되찾아
다시 천사가 되었군.
하지만 나에겐 자네보다 더 위대한
신성이 태양같이 들끓고 있다네.
나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가 그럴 게야.
그 무한한 천사의 힘이 해방되면
수없이 많은 신들이 이 땅에 생겨날 것이고
그에 걸맞은 천국들도 창조될 걸세.
에녹 자네가 지금 승천한 후로
다시는 아담의 모습을 한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이 땅에 환생할 것이고
내 스스로 저주받은 이 봉인을 풀어 버리겠네.
그러므로 나의 제일가는 천사성을 다시 찾고
잃어버린 낙원을 내 스스로 만든 후에
반드시 하느님을 능가하는 신으로
영원히 진화해 나갈 걸세.
그때 우리의 머리 위로
하늘이 열리며 쉐키나가 쏟아져 내려왔다.
아담은 그 빛을 맞자 눈이 부셔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우리는 황홀한 기분에 잠겨 미소 지었다.
그 빛의 너머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나의 사랑하는 에녹아
다시 나의 품으로 돌아오너라.
이곳이 너의 고향이니
이제 이곳에서 영원히 거할 준비를 하거라.
그러자 나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때 아담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하느님께 애원했다.
당신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봉인을 풀어주실 것이지
왜 짐승의 멍에를 메워주시는 겁니까.
우리가 신으로 진화하는 것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제가 분명히 예언하건대
우리 중에서 수많은 신들이 나올 것이며
인간은 당신보다 나를 더 따를 것이고
당신은 한낱 상징적인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귀엔
그런 아담의 절규가 점점 사라지며
나의 몸은 천천히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나의 옆엔 라구엘이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나의 눈앞에 펼쳐지는 운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도.
지구에 태어날 신의 모습도.
다시 태어날 사탄의 모습도.
출처: http://m.cafe.daum.net/minority/2MN/87?q=D_6Zo_7nProV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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