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아름다운 열매와, 나쁜 열매"는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 분별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겉으로 보이는 착한 행실만으로 그들의 속 마음을 분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마음 수양을 위한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는 한평생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러한 삶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삶일까?
그렇다면, 예수와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핍박받은 것은 나쁜 삶을 살다 간, 나쁜 열매들일까?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말씀한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못된 나무라 말씀하였고, 나쁜 열매라고 말씀하였다.
그런데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잘 먹고 잘 사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면, 무엇을 기준으로 아름다운 열매와 나쁜 열매를 구분하는 것일까?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 곧 아름다운 열매와 나쁜 열매의 기준은 이러한다.
첫째,
좋은 열매는 독이 없다.
즉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좋은 영양소가 들어있는 열매이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먹는 사람들은 생명이 건강해진다. 건강한 생명으로 이웃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좋은 열매는 사람들을 헤치지 않는다.
예수와 사도들은 좋은 열매였다.
예수와 사도들은 복음을 세상에 증거 하였지만, 복음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핍박하지는 않았다.
다만, 저들이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도록,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착한 행실을 보여주는 자들이었다.
둘째,
나쁜 열매는, 독이 있는 열매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먹으면, 생명이 죽게 된다.
나쁜 열매를 먹는 자는 자신도 죽게 되지만, 이웃도 죽게 만드는 해로운 열매이다.
바리새인들은 못된 나무였고, 나쁜 열매였다.
바리새인들은 저들의 교리를 따르지 않으면, 핍박하고 죽이는 자들이었다.
저들은 세상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세상 권세를 지키기 위해, 세상에 속한 삶을 살았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나쁜 열매 안에는, 독이 들어있으므로 저들도 죽게 되고, 이웃도 죽게 만드는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한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불에 던져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으로 구분하여,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분별할 수 있을까?
이쪽 말씀을 들으면 이쪽 말씀이 옳은 것 같고, 저쪽 말씀을 들으면 저쪽 말씀이 옳은 것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말씀의 분별은 간단하다.
세상 부귀영화에 초점을 맞춘 말씀은, 사탄의 유혹이 길들여진 멸망의 말씀이고, 장차 천국에 들어갈 영생에 초점을 맞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에 들어가는 생명의 말씀을 얻으려고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육신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성령에 이끌리어 40일간 금식한 후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다. 시험을 받으실 때,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게 할 테니, 그 앞에 절하라고 유혹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사도들도 세상 부귀영화를 버리고, 영생하는 생명을 얻기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하셨다.
사탄은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까지, 세상 사람들의 육신을 붙들고 유혹할 것이다.
우리들은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고 있으므로, 삶의 평안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평안이 육신의 쉼을 통한 편함보다, 마음의 평안이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육신의 쉼이 없이는 마음의 평안도 누리기 힘들 것이다. 이는 죽는 날까지 육신에 매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신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안개와 같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한다고 말씀하였다.
이 즐거움은, 육신의 고통보다 영생의 기쁨이, 더 큰 기쁨을 안겨주었기 때문일 것이다.(롬 5:3~4)
로마서 5장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영생에 이르는 열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유혹하는 육신의 열매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롬 8:5~6)
로마서 8장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오늘날은 숫자가 많으면 열매도 많은 걸로 착각하는 시대이다.
구약시대 때, 노아의 가족 여덟 명 외에는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그때도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매가 중요하였던 것이다.
생명의 문은 좁고 협착하여 그리로 들어오는 자가 적다고 말씀하였다.(마 7:13~14)
마태복음 7장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아름다운 열매란?
자신 스스로가 맺어야 할 구원의 열매이다.
그리고 자신의 열매로 착한 행실을 보여, 다른 사람들도 착한 열매가 되게 하는 것이다.
2023. 2. 22.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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