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언어의 혼란에 대하여
우리가 성경 말씀들을 표현할 때 좀 더 깊이 묵상하지 않고 나타내는 표현들이 있는 것 같아, 이를 깊이 묵상한 후 깨달은 것들을 적어봅니다.
1)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시점은 아마도 구약시대 때에 부르던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을, 신약시대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로 오신 후로부터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아버지를 먼저 부르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부르던 것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르시던 아버지를 우리들도 같이 부르게 되었다 해서 이를 더욱 강조하려다 보니 아버지를 먼저 앞세워 부르게 되고, 뒤 이에 하나님을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표현을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의미만 같으면 되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성경 말씀을 일점 일획도 변개치 못하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나 읽어도 주신 메시지에 대한 혼란을 막기 위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 하나님"으로 부를 때는, 하나님보다 아버지를 먼저 묵상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처음 읽는 일반인들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번역되고 있는 성경에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번역한 구절 몇 개를 찾아 보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었으며, 또 "하나님 아버지"라고 번역된 것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통일성 없이 이렇게 번역하였을까? 의문은 계속 남습니다.
신약성경 개역한글 번역에는"하나님 아버지"를 15회, '아버지 하나님"을 7회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 성경 번역들을 검색해보니 "아버지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로 올바르게 번역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필자가 이렇게까지 묵상하는 이유는 근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어머니 하나님", "아들 하나님"등... 별 희한한 문구가 떠돌아서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가 같은 뜻처럼 보이지만 이를 깊이 묵상해보면 번역을 잘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적해 봅니다. 앞으로는 애완견을 두고 뒤에 하나님이라는 문구가 등장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성경의 질서대로 하나님을 먼저 부를 때, 하나님을 먼저 묵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게 되면 여호와(יהוה) 하나님 외에 다른 언어로 혼란을 일으키지 못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2) "하나님의 영(성령)"과 "성령 하나님"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그의 영(성령)을 보내십니다.
즉 여호와(יהוה) 하나님 없이 성령을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성령이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을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도 "하나님의 영(성령)"이라고 되어있지 "성령 하나님"이라고 되어있지 않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임하는 권능입니다.
"성령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깊이 묵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들 때문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힘을 주십니다. 이는 영적인 문제인지라 육신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표현한 글들 중 "한 몸 안에 두 개의 인격체가 있는 것 같은"("삼위일체가 아닌, 셋이 하나의 영입니다" 의 글 중에서...) 표현이 그렇습니다. 이는 영적 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6:44~46)
이 말씀은 예수님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자가 아니면 이해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증거하실 때 이런 비유 저런 비유,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음은 보게 됩니다. 이렇게 증거하는 필자는 지금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져 글쓰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또 어떤 반응이 올는지...
필자는 예수님처럼 하늘나라를 증거할 능력도 없고 또 그렇게 큰 능력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다만 부분적으로 본 계시의 사실들을 바탕으로 성경 일부를 풀어 놓은 것뿐인데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필자는 선지자도 아니요, 특별한 제자도 아닙니다. 평범하고 순수한 성도일 뿐인데, 주변에서는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심히 염려가 됩니다. 물론 기존의 교리와 상반되는 글 내용에 대하여는 이해가 어려웠으리라 공감합니다. 함께 아파하며 주님께 기도해 보십시다. 내가 선 줄로 생각하면 벌써 그가 주님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마지막 그날까지는 온전한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모두가 시험의 때를 면한 자일 것입니다.
필자가 다니는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왜냐면 주님이 이곳에서 일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는 성령께서 말씀하시길"이는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일"이라는 음성으로 분명히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담임목사님, 동사목사님을 비롯하여 모든 교역자님들과 장로님들, 집사님들, 권사님들, 성도님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함께 협력하는 협력의 대상이며, 필자가 배우고 교제해야 할 형제자매님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필자가 쓰는 이 글들은 우리 교회를 두고 쓴 글이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해를 하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교회 세습을 앞두고 일어난 일이라 더욱 의심을 하였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지구촌 모든 교회가 함께 공유해야 할 글입니다. 어느 지방 교회 하나를 대상으로 쓴 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필자는 하나님의 어린 성도이기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지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글을 적지는 않습니다.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글 쓰도록 성령을 통해 이끄시면 순종하는 것이지, 주변 상황을 보고 이를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주변 상황들을 더 우선시하면 주님 중심의 사람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지금 "나팔소리를 내어라" 말씀하시는데, 청지기가 "주님 우리 주변 상황이 이러하니 보류해 주십시오" 한다면, 이러한 자를 청지기로 쓰시겠습니까?
그래서 청지기들의 삶은 세상 사는 동안은 고달픔과 핍박과 박해와 고난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기쁨과 평안을 누립니다. 즉 승리의 깃발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쓴 글들이 복음 및 구원과 무슨 관계냐? 하실 것 같아 몇자 더 적습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에서 젖만 먹어서도 안되며, 보다 더 깨우쳐 밥도 먹는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깨달음이나마 공유하여 주님 강림하실 때 더욱 깨어있도록 하기 위한, 협력하는 관계의 한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나타내고자 하오니 어느 단체나 제도권을 너무 앞세워서 이가 주님보다 앞선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은 어느 누구나 동일하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닮으라고 말씀 증거하실 때 주변 상황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성령에 이끌리어 일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성령의 이끄심이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힘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은 성령의 인도함이 아닌, 굳어진 고정관념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교회 질서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교회 어린 자들을 깨우치실 때 교회의 본이 되어야 함을 성경을 통해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벧전 5:3~4) 하였습니다.
지금 필자를 대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낱낱이 드러날 것입니다. 필자도 그날 부끄러움에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힘써 견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행하므로 가능합니다.
필자가 지금 새롭게 느끼는 것은 우리 교회는 어느 교회보다 깨어 있는 교회인 것 같음을 느낍니다. 일부 제도권 안에서 잠자는 교회 같았으면 필자는 홀대를 당하여도 벌써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잠히 점검하고 테스트하면서 지켜보는 상황은 깨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필자 자신에게 고백하건대, 필자 자신도 완전한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몇 년 전부터 깨달은 것은, 지구촌 어디를 가도 완전한 교회와 완전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주님이 분명히 보여주신 계시들을 토대로 하여 말씀에서 깨달은 것들을 희미하게나마 붙잡고 그 푯대를 향해 힘써 나아가자는 증거일 뿐입니다.
육신을 입고서는 주님을 내가 마음대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찾아 주셔서 깨우쳐 주실 때 그 깨우침 일부만을 알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되어서 드리는 말씀인데, 꿈에서 환상이나 계시를 받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판단하므로 이의 진상을 밝히기가 매우 어렵지만 그 기준은 성경과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일치하는데 일부분이 틀릴 때는 원서 등을 찾아 검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똑똑하고 권위가 있어 뵈어도 주님 앞에서는 연한 풀과 같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자의 심정은 갈멜산 꼭대기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자가 최근 깨닫고 묵상하는 성경 구절은 다음 구절입니다.
주님은 감추었던 말씀들을 그때그때 증거하도록 깨우쳐 주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감사드립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3:7~13)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1~5)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 21:10)
이 구절의 말씀들은 필자뿐만 아니라, 이 구절이 마음에 새겨지시는 모든 자들의 말씀일 것입니다.
다 함께 묵상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 동참하십시다. 평안을 빕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첫 번째 글(삼위일체가 아닌, "셋이 하나의 영"입니다.)이 너무 충격적이라는 걸 잘 알므로 필자도 너무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증거 되었으니 시간을 두고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최근 인터넷으로 확인한 사실은 영어 성경 번역은 "하나님 아버지"로 통일되어 있는데, 우리 성경은 이를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이합니다.
2011. 8. 23
서울에서 하나님의 사람, 작은 자 솨케드(שקד)
'성경의 의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은 사람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2) | 2024.02.03 |
---|---|
성경말씀의 변질(시 8:4~5) (2) | 2023.12.07 |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0) | 2023.03.14 |
성경의 의문들(욥38:5~7, 잠8:22~27, 잠30:4, 창1:26, 창6:2~3) (0) | 2013.05.31 |
댓글